2nd CYCLE을 준비하며
가방만들기는 기본적으로 기술적이고 실무적인 작업이며 5년 동안 일상적으로 수행했다. 슬슬 참을 수 없을 때에는 떠나간 애인, 왠지 아련한 나의 티셔츠나 므흣한 표정들을 그렸다.
"졸업할 때 천만원만 있으면 나가서 장사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 놓을테니까 그 때 꼭 도와주세요."
천 만원은 무슨, 천 만원은 보증금 내면 끝난다. 이것저것 계산하니 2천만원이다. 내 맹랑함을 사랑하시니 우스워보이고 싶어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천, 이 천 정도는 어떻게 되겠지. 제발. 이게 없으면 정말 전부 끝 이니까.
빛나는 사람들이 좌절되는 모습은 정말이지 보기 어려웠다. 운명의 협곡이나 피비린내 나는 최전방도 아닌, 그냥 절박한 동네에서 그야말로 쓸쓸한 죽음. 미술원 복도의 그림들 같다. 나는 저렇게 해야지 보다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라는 것들을 배우는 귀중한 시간. 학창시절이 끝나니 교수들을 존경한다. 그 나이와 그 직업, 그리고 지켜낸 역할.
한 개의 아름다운 가방은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두통까지 낫게할 수 있다. 고객들과 1:1 대화를 통해 그 사람만을 위한 가방을 만들어오는 일을 5년 했다. 사업자등록도, 제대로된 결제 시스템도 없었지만 그간 만든 가방 사진을 올려둔 SNS가 그들이 나에게 10만원씩 보내면서 가방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모래성이 되었다.
가상의 모래성을 실재하는 벽돌 가방 가게로 만들고 싶을 뿐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그들의 치유자이고 서로가 필요하다.
이 생산과정의 비효율은 다른 위대한 치유자들과 마찬 가지로 나에 대한 치유의 일환이기도 하다.
임대는 2년 계약이다. 목표는 생존이다.
이게 내가 선택한 배수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