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활 잡 화 전

2017 . 12 . 01  -  2017 . 12 . 14

고객님께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내가 만든 것들을 싣고 빈터에 나가 석유를 뿌려 불 태우는 일, 혹은 갤러리에서 전부 헐값에 팔아버리는일.

어쩌다가 후자가 되었으나 모든 것을 버리기로 마음먹은 것은 똑같다. 그 가난한 땅에 있는 유명한 학교에서 사로잡힌 꿈이며, 희망이며, 사랑 등 그런 것들의 그림자까지 모든 것을 태우리라.


언젠가 교수가 내 작업을 보고 가방도 미술도 아닌 곳에 불시착하고 있다고 했다. 확실히, 그냥 가방이잖아 싸게 줘, 하면 왠지 서럽고, 미술인데요 하기엔 쑥스러운 구석이 있다. 절망과 자부심을 안겨준 길고 고통스러웠던 행복한 자리 못 잡음이 오리지널리티일까? 가방이 무엇입니다? 아, 거방은 어떻습니까. 거방. 기묘한 가방. 거방이면 좀 편할까요. 충격적인 그림이 있나요? 예술적 감동이든, 소박한 놀라움이든, 내게 바라는 것은 좀 더 피부에 와닿는 생리적인 충격이다. 아무도 가슴에 우러나오는 감동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만들어 버린 것들.


홀로 가방을 만들다 보면 이 지구에서 나만 보는 순간들이 있다. 직접 만지고 보고, 들어가고, 살까 말까, 집으로 가져갈지 말지, 화장실 문옆에 걸어둘까, 어떡하지. 그런 것들을 만들고 팔려고 한다. 억척스러움도 거짓말도 싫어서 실력에 기댈 수밖에.


갤러리에서 연락이 왔다. 전시를 열어주겠다고 했다. 전시에는 갤러리에 돈을 내고 대관하는 대관전이 있고, 갤러리의 기획에 작가로 참여하는 기획전이 있다. 우리는 기획전 작가다. 얼마나 기획될 기회를 기다렸는지 아씰까 이분들. 휴. 얼마나 원했던지. 내 고해성사는 미술관에서 치르기를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바랐는지. 볼만한 전시를 만들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작품을 완판하겠다.


그동안 우리 가방을 끈질기게 찾아준 고객들에게 이 전시를 바칩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위한 습작, 2017,  recycled fabric 

42x33cm_35x57cm_35x100cm

5:57pm, 2017, fabric, 32x37cm
6:21pm, 2017, fabric, 32x37cm
ORDER-MADE, 2017, recycled fabric 
BLANKET, 2017, fabric